1999년에 플로피디스크를 저장매체로 한 SONY의 MVC FD81이라는 카메라로 디지털사진에 입문한 이후
몇년간 디지털 소식에는 귀를 닫고 살았다.
2003년. 모 자동차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렌즈교환식 디지털카메라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구입한지 10년이 지난채 하드케이스 속에서 잠자는 Nikon F601과 헝그리렌즈 몇 개 있던 나로서는
이 충격적인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소식에 가슴이 뛰었다.
D1 이나 D2H 같은 기종들이 먼저 나와 있었지만 난 그런것도 몰랐고, DSLR은 이 세상에 오로지
D100 하나만 나와있는줄로만 알았다.
그리곤 하나로텔레콤 사이트 어느구석에 있던 D100 공동구매 배너를 망설임 없이 눌렀다.
사진엔 관심도 없던 내가 그토록 앞뒤 가리지않고 이녀석에게 혈안이 되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몇 개 뿐이지만 썩고있는 써드파티 렌즈들을 활용한 디지털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 뿐이었다.
디지털카메라로도 흐릿하게 아웃포커싱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뜬채로....
5년째 쓰고있지만 센터에는 CCD 청소하러 딱 한번 다녀온 D100
대략의 사양(기계치인데다 만년초보라 적어놓고도 무슨말인지 모름. ㅡㅡa)
형식 : 렌즈교환식 일안리플렉스타입 디지털카메라
촬상소자 : 23.7 x 15.6mm 크기의 CCD.
총화소수 : 631만화소.
유효화소수 : 610만화소(3,026 x 2,018)
촬상감도 : ISO 200 ~ 1600 상당 증감(ISO1600 상당 +1, +2단)
기록매체 : 콤팩트플래쉬카드(타입 Ⅰ/Ⅱ 대응), 마이크로드라이버 대응(1GB)
파인더시야율 : 약 96%
포커스에리어 : 5개의 포커스에리어중 1개 선택가능
AF에리어모드 : 싱글에리어 AF모드,다이나믹 AF모드(지근우선 다이나믹 AF 기능)
측광방식 : 3D-10분할 멀티패턴측광, 중앙부중점측광(중앙부 중점도60%), 스팟측광(전 화면의 약 2%)
노출보정 : ±5.0 단의 범위로 1단,1/2단,1/3단 스텝으로 보정
오토브라켓팅 : AE/SB.AE.SB 화이트밸런스 브라케팅 기능
셔터스피드 : 30 ~ 1/4,000초, Bulb
싱크로동조 : x접점만, 1/180초 이하의 셔터스피드에서 동조
크기 : 약 144(폭) x 116(높이) x 80.5(깊이)mm
무게 : 약 700g(전지제외)
사용소감
각 사진관련 사이트들의 기종관련 스펙비교나 샘플사진 비교기들을 보면서 그러한 것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던 반면, 감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기계의 한계를
인정해버리고 나면 나머지 몫은 스스로의 감성에 좌우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결과물의 호,불호에
따라서 나 스스로 카메라를 탓한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잘나오면 우연이고 못나와도 내 탓이라는, 철저한 자기비하.만년초보주의의 입장에서 받아든 d100은
그래서 더더욱 나에겐 과분했고, 사진에 있어서 만큼은 나 자신보다 그녀석이 주인이었다.
그래도 사용기이니 만큼 녀석의 장.단점을 까발리자면 단점을 제외하면 모두 장점이라고 할만하다.
-단점1 : 가끔씩 보이는 화이트홀
경우에따라서는 좀 자주 보인다고 해야할까....
하이라이트의 범위가 좀 넓은게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있다.
머.. 그정도야 촬영하면서 좀 주의를 하면되지 하는 생각으로 그다지 큰 단점으로
여기지는 않았었는데 새로나오는 기종들의 샘플사진들을 보면서 가끔씩 비교가 된다.
-단점2 : 연사후 버퍼링 속도
"자~ 아빠가 뒤에서 찍을테니 됐다고 할 때까지 계속 뛰어가는 거야. 출발!!!!!"
찰칵!찰칵!찰칵!......조용~~...(모래시계)......
"아빠~~ 다 됐어요~~~~~~~~~~~~~~~???!!!!!"
"..........ㅡㅡㆀ"
애가 사라지고 없다.
이외에도 굳이 찾아보자면 단점이 셀 수도없이 많겠지만 타 기종과의 상대적 비교욕구나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의심이 없었으므로 지금 딱히 생각나는 단점이란게 없다.
어찌보면 애지중지하는 기기에대한 애정결핍이라고 볼 정도로 녀석에 대한 평가에 둔감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5년을 써 오는동안 녀석에대한 나 자신의 심정적인 변화와 녀석이 우리가족에게 가져다 준 변화를 사진들과 함께
되짚어보면서 D100에대한 애정을 대신하고자 한다.
절대추종의 시간들
아직도 그렇지만 d100 구입초기의 내 사진실력은 형편없었다.
그저 카메라에 렌즈를 뗐다 붙였다 하는 기술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터라 영문으로 된
복잡한 세팅기능은 아예 쓰지도 않았고 raw나 tiff는 외국에서나 주로쓰는 그림파일명인줄로만 알았다.
당연히 후보정이란 것도 몰랐고, 사진이 뿌옇게 나와도 그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런 사진을 찍는줄로만 알았다.
감히 거금 200만원이 넘는 카메라가 찍은 사진을 어느누가 탓할 수 있으랴 싶었다.
그만큼 내 사진생활에 있어서 d100은 나의 주인이었고, 녀석의 복잡한 기능들은 무지한 나를 압도했다.
그러한 무지의 시간속에서도 실수로 괜찮은 사진이 나오기라도 하면 그것이야말로 d100 본연의 사진이었고
그간의 형편없던 사진들은 바로 나 자신의 실력이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D100 손에 익히기
둔감한 나 자신도 눈썰미는 있었는지 사진과 관련된 사이트들을 알게되었고 후보정에 대해서도 눈뜨기 시작했다.
렌즈들과 각종 카메라관련 용품들에 돈이들기 시작했고, 그동안의 사진들에대한 반성도 뒤따랐다.
사진취미에 관한한 아내는 우호적이었다.
아마 사진이 아니었으면 나는 컴퓨터앞에서 폐인의 경지에 도달했거나, 우리가족들이 주말마다 대문밖에 나갈
일이라곤 슈퍼에 라면사러 가는 정도의 외출밖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각종 정보들을 하나 둘씩 주워들어 나름대로 d100의 기능활용과 특성에 대하여 조금씩 눈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d100의 성능에 대하여 부족하다거나 아쉽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던가보다.
아직까지도 나의 사진실력은 d100의 스펙을 넘어설정도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빛에 눈뜨다.
빛에 대하여 약간 눈이 뜨이기 시작했던것 같다.
애초부터 d100을 탓하는 마음이야 없었고(과분했으니), 각종 갤러리들의 빼어난 사진들을 보면서
나의 d100도 결코 못찍어낼 사진은 아닐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거의 집에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오기 싫어하는 은둔형의 성격이었는데 온갖 갤러리를 장식하는
멋진 출사지들은 주말마다 나를 유혹했다.
한 번 갔던 곳을 다시 찾고, 가족과 같이 움직일 수 있는 날이면 그 전날 오후까지는 출사지에
도착하여 해의 방향이나 배경이 될 자연조건들에 대해 사전답사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한때 하이앵글의 매력에 젖었을 때의 우리가족 출사도구들을 살펴보면....
삼각대 묶어서 15kg에 육박하는 배낭은 짊어지고, 오른손엔 사다리와 탈의용 소형텐트, 왼손엔
아직 어려서 걸음을 못따라오는 막내를 들쳐안았다.
아내는 아내대로 김밥과 음료가 든 배낭을 짊어지고, 아기들 옷가지가 든 가방과 깔고앉을 자리를
한손에 들고, 나머지 한 손은 둘째 손을 잡거나 캠코더 들고....
암튼, 즐겁게 배우던 그 때엔 남들이 보면 정말 무식을 넘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물불을
안가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나 나름대로 나의 작품에대한 가격을 매기는데,(물론 사 줄 사람이야 아무도 없지만....)
작품 한 장당 원가는 30만원으로 책정한다. 한번 출사에 한 장 건진다는 소리다.
유류비+통행료+가족 외식비+가족 숙박비+ 기타 = 30만원 (5인가족)
아기들이 아직 본격적으로 공부할 나이가 아닌지라 날씨좋은 주말만 되면 온가족이 여행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사진이 우리가족의 주말 생활패턴을 바꿔놓았고, 나도 아내도 생활비가 허락하는 한도내에서는 이를
즐겼는데, 아기들은 몇시간씩 걷거나 차안에 갖혀있어야 하는 부담때문에 가끔씩 싫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고나서 돌이켜보면 주말마다 집에 틀어박혀있거나 복잡한 놀이공원에서 오싹오싹 체험을
하는것 보다는 똥거름 냄새 맡으며 들에서, 강에서 그들만의 창의적 세계를 자연으로부터 얻어내는
법을 배우고 맑은 심성을 키우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유익했었다고 본다.
그러면서 나는 출사지에선 아주 심각하게 빛을 고르는 척 이리뛰고 저리잰다.
사진을 모르는 아내가 아주 존경스런 눈초리로 봐주기때문에.... ㅡㅡ;;
사실, 어느 정도는 사치스런 기분으로 시작한 사진이었는데 아기들이 자라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생활이 되어버렸다.
D100-추억의 아이콘
어린 아기들은 금방 쑥쑥 자란다.
2~3년 전에 갔었던 출사지에 오랜만에 다시 가보면 나는 불과 몇년전에 같이왔던 우리 아기들의 어렸던
모습들이 새삼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추억속에는 우리가족과 빛. 그리고 D100이 항상 함께한다.
사진의 기교에 대해서 어느정도 눈뜨는 순간에 가장 크게 느꼈던 부분이 바로 가족이었다.
멋진 사진에의 욕심에서 비롯된 출사여행이 2년이 되고 3년이 되면서 아기들도 나름대로
여행 속에서 가족과 자연에대한 느낌과 생각들이 정립되는 듯한 눈치가 보였다.
사진으로 시작된 여행은 추억을 낳고, 추억은 사랑을 낳는다.
사랑하면 세상은 완벽해지고, 내 주변의 어느 것 하나도 나를 위하지 않는 것이 없다.
세상을 나에게 끌어 들이는 힘.
그 조그만 변화는 d100과 나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궁극의 카메라는 무엇인가?
추억이라서 아름답다는 말들을 한다.
당신이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당신의 추억은 대부분 돌아가고픈 아름다운 기억들 뿐일것이다.
그것이 힘들고 슬펐던 기억이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어떠한 카메라도 당신의 기억속에 남은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추억과 느낌을 그대로 각인하지는
못한다. 상기시켜 줄 뿐이다.
기나긴 시간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찰나를 회상하며 남은 여정에 희망을 그려넣는다.
나에게 있어서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의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 사랑을 전달하는 혼이 실린 매개체이자
나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제2의 가족이다.
D100을 놓으면서
아기들도 이젠 커서 공부할 나이가 되었다.
주말마다 같이 여행할 수 있는 기회도 얼마남지 않았다.
5년동안 나를 길들여온 d100은 이제 아내에게 넘겨졌다.
아내와는 삼년에 말다툼 한 번 할까말까할 정도로 다퉜던 기억이 거의 없는데, 사진때문에 아주 대판,
그것도 거의 우리가족 주민등록에서 내가 삭제될 뻔한 대 사건이 있기도 했었다.
어쨌거나 D100은 이제 아내를 길들일 것이고, 아기들은 또 훌쩍 자라서 각자의 소리를 낼 것이다.
녀석이 어느날 작동을 멈추고 거실의 장식장 속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한다 하더라도 우리가족 모두가
녀석을 볼 때마다 '사랑'과 '행복'을 기억하게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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